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비심이나 긍휼심은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지만, 예수님 당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는데, 로마인들은 남자다운 용기, 엄격한 정의, 가혹한 훈련, 그리고 강력한 힘을 가치있게 여겼지만, 긍휼 혹은 자비는 멸시했습니다. 그 당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던 한 로마철학자는 자비심은 영혼의 병이다라고 했는데, 그 말은 긍휼심은 연약함을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진짜 남자라면 특히 진짜 로마인이라면 자비심이나 긍률심은 없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살던 시대의 이스라엘의 종교인들에게도 글휼심은 없었습니다. 그들 종교지도자들은 누가 자기들의 종교적 규칙에 어긋나면 매몰차게 정죄하고 죄인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멸시하고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의로 여겼고, 그것이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은 고치신 이유는 그들을 불쌍히(긍휼)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에 대한 예수님의 기본감정은 불쌍히 여기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길때,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8) 긍휼의 기초는 공감입니다. 공감이란 상대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거기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상황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길 때 용서도 가능해집니다.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긍휼의 마음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