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목사님께서 섬기시는 교회의 누군가가 목사님에 대해 터무니없는 소문을 내며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억울하고 분해서 숨을 쉴수 없었습니다. 당장 당사자를 찾아가 헛소문퍼뜨린 이유를 묻고 개인적이고 공개적인 사과를 받고싶었으나, 그러면 일이 더 커질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목사님 마음에“바로 지금이 내가 죽어야할 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죽었습니다.” 실성한 사람처럼 열 번째 그 고백을 했는데, 죽음이 하늘에서 임했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해졌습니다. 숨을 쉴수도 없었떤 고통과 분노가 차분이 가라앉았습니다. 옛사람이 죽었음을 믿고 고백하자 그죽음이 실제로 경험된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미움도 답답함도 분노도 없었습니다.
그 때 또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제 저에게 주님의 마음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자 갑자기 통곡이 나왔습니다. 말할 수 없을만큼 가슴이 아팠습니다. 울다가 지쳐서 탈진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갑자기 내가 왜 이렇게 울고있지?”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너가 나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느냐?“
그제야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헛소문을 퍼뜨려 교회를 어지럽히는 교인을 바라보시며 통곡하시고, 그 교인을 향해 분노하는 목사를 바라보시며 통곡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죄를 짓는 우리를 보고 있는 주님의 마음은 분노가 아닌 슬픔이었습니다. 슬픔으로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성도를 징계하실 때도 그 슬픔으로, 그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고쳐지지 않으니 어쩔 수없어서 하시는 것입니다. 정죄를 넘어 안타까와하고 슬퍼해야 중보기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중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모두가 정죄가 아니라 통곡함으로써 진정한 중보기도자, 중보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