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은 그의 책 “죽음의 수용서에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시련은 그것의 의미를 알게되는 순간, 시련이기를 멈춘다고 할 수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한 번은 나이 지긋하신 의사 한 분이 우울증으로 상담을 받으러 왔습니다. 그는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내를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었습니다. ‘내가 그를 어떻게 도울 수있을까? 그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 만약 선생께서 먼저 죽고 아내가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가 말했습니다.
‘오, 세상에! 아내에게는 아주 끔찍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견디겠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것 보세요, 선생님. 부인께서는 그런 고통을 면하신 겁니다. 부인에게 그런 고통을 면하게 해주신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다. 그 댓가로 지금 선생께서는 살아남아 부인을 애도하고 계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조용히 일어서서 제개 악수를 청한 후, 진료실을 나갔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시련은 그것의 의미-희생과 같은 의미일수도 있다-를 알게 되는 순간 시련이기를 멈춘다고 할 수있습니다.”
프랭클은 사람은 시련의 의미를 알면 극복하기 쉽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여러사건들속에 하나님께서 감추어두신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물론 나중에야 아는 경우가 많겠지만, 어쨋든 우리가 당장은 알지 못한다 해도 그 시련속에 의미가 있음을 알고 용기를 내야 할 것입니다.